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오 9세 (문단 편집) == 개인적인 면모 == || [[파일:external/25.media.tumblr.com/tumblr_m4f9ieEnz31qiszm6o1_400.jpg|width=200]] || '''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[[사진]]을 찍은 교황으로''', 주변의 [[추기경]]들은 사진찍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지만,[* 주세페 페치(Giuseppe Pecci) 추기경(비오 9세의 후임 교황 [[레오 13세]]의 형)은 사진 찍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, "초상화를 그리는 것 만큼 인간의 내면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는데 굳이 사진을 찍으려 하는지 모르겠다."며 투덜거렸다고 한다.][* 다만 당시는 사진 찍는 기술이 막 시작된 단계라 지금처럼 금방 금방 찍을 수 없었다.(저 포즈로 20분동안 꼼짝 안하고 있어야 했다.) 그래서 사진을 찍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사진 촬영이 고역이기도 했다. 게다가 초상화의 경우 당연히 뽀샵 처리가 행해진다.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적당히 미화해 주는 초상화가 더 좋았을 듯하다.] 비오 9세는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. 사적으로는 검소한 사람으로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. 또한 아이들을 많이 귀여워했는데, 납치했던 [[유대인]] 아이 에두아르도도 귀여워하며 친히 키웠다. 에두아르도는 교황의 애정을 받으면서 성장해 [[사제(성직자)|사제]]가 되었다.[* 물론 이러한 개인적 면모가 아동 납치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.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종교적 목적의 [[유괴]] 역시 흉악한 중범죄로, 납치해 온 아이를 귀여워하며 직접 키웠다는 것은 그저 유괴의 목적이 '양육'이었음을 의미할 뿐이다.] 에두아르도 납치 사건은 [[마르코 벨로키오]] 감독의 [[납치(2023)]]로 영화화되었다. [[성모 마리아]]에 대한 공경심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는데, 이는 그가 [[성모무염시태]] 교리를 선포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여겨진다. 몸이 허약하여 어릴 때부터 성모 신심이 강했다고 한다. [[이탈리아 통일]] 이후 [[바티칸 포로|바티칸의 수인]]을 자처하며 자신의 불행을 호소하는 교황의 모습은 특히 독실하고 보수적인 신자들에게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. 그러나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